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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뒷이야기/가요계 뒷이야기

조용필을 모르신다고요?

by 묘냥이 2024.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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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부대의 원조는 남진과 나훈아가 있겠지만, 현재까지 가왕으로 인정받는 가수는 뭐니 뭐니 해도 조용필이라고 할 수 있다.

 

조용필은 1968년에 록 밴드로 음악 경력을 시작했으며, 1975년에 솔로로 전향하여 발표한 1집 앨범의 타이틀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곡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여러 번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또한 대만의 유명 가수 등려군(鄧麗君)이 이 곡을 리메이크하면서 대만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곡은 북한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단순한 대중가요를 넘어, 당시 사람들의 감정과 시대적 배경을 반영한 노래로 여겨지며, 한국 가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조용필은 위에도 언급했다 시피 록밴드 출신으로 히트를 친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트로트등 다양항 장르의 음악을 시도하고 이를 히트시키기도 했다. 

조용필은 음반의 전반적인 작사와 작곡에 참여하여 원조 싱어송라이터로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데, 미디어의 노출을 꺼려 인지도에 욕심은 없는 듯해 보이지만, 그의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집착과 욕심은 유명하며 최근에 이를 증명한 앨범이 19집 Hello 음반이다.

Hello는 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였고 김이나 작사가 버벌진트등 젊은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를 하였다.

Hello는 정말 간만에 나온 앨범인 만큼 공격적 마케팅도 진행하였다 알려져 있는데, 조용필의 이름에 살짝 바람을 불어준 정도라는 업계 관계자의 뒷말이 있다고 한다.

2013년 헬로 앨범은 10만 장 이상이 팔렸으며 멜론 차트 상위를 휩쓸어 그 해는 조용필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013년 올해에 노래에 Bounce가 선정되었고 엠넷 아시아에서 올해의 노래상을 받기고 했다.

이 신드롬이 젊은 층에서는 갑작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80년대 조용필의 독주를 막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젋은 층에게 전영록 등이 인기가 많기는 했지만 연속으로 가수왕을 차지하여 본인은 더 이상 연말 시상식에 첨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조용필은 대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스캔들이 많지 않은 가수 중에 한명인데, 생전 2번의 결혼과 한 번의 이혼을 하였다, 재혼 상대인 안진현 씨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였다 전해지고 안 씨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조용필은 우울증을 앓고 식음을 전폐하였다고 훗날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